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스날에 합류한 스페인 센터백 파블로 마리는 웨스트햄전 매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가족이 축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했다.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엄마, 아빠, 여동생 이렇게 네 명이에요. 우리 가족은 꽤 엄격하고 축구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 항상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어요. 우리 가족은 제가 축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떤 방법으로든 저를 도와줬어요. 부모님은 항상 훈련장까지 저를 데려다줬고, 일 때문에 시간이 안될 때는 친척들이 대신 데려다주기도 했어요. 또, 우리 가족은 제가 뛰는 경기를 보기 위해 항상 경기장에 찾아왔고 현재는 제가 해외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 모두는 유로 채널에 가입하여 TV를 통해 제 경기를 보고 있어요. 가족은 제 축구 인생에 있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자랐는지?
발렌시아가 고향이에요. 우리는 발렌시아의 알무사페스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발렌시아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그 후에는 레반테에서 뛰었어요. 그리고 프로 생활은 마요르카에서 시작했어요.
그때 당시, 집은 어땠는지?
평범한 가정집이었어요. 우리는 행복했고 겸손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가정이었어요. 엄마 쪽과 아빠 쪽 모두 매우 엄격했고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각자의 생일 때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어요. 우리는 항상 행복이 넘쳐흐르는 그런 가정이었어요.
가족이 아직도 거기에 사는지?
네, 아직도 발렌시아에 살고 있어요.
가족 휴가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날이 있는지?
우리는 휴가 철마다 함께 휴가를 떠나요. 항상 행복한 여행이었고 웃음이 넘쳐흘렀어요. 또,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가정은 매우 엄격하고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정말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어요. 사촌들과 함께 집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집에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해변이 있어서 여름에는 항상 그곳에 가기도 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집에 들르기도 해요. 정말 말 그대로 평범한 삶이었어요.
혹시,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지?
네, 강아지 한 마리를 기르고 있고 고향 집에서도 강아지를 기르고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발견하면 집에 데려와서 키우곤 했어요. 제 첫 번째 강아지 이름은 '토르'였고 두 번째 강아지 이름은 '날라'라고 작고 귀여운 암컷 강아지였어요. 그리고 7살 때, 인생 처음으로 제가 모은 돈으로 강아지를 구입한 적이 있어요. 그 강아지 이름도 '토르'였어요. 왜냐하면, 제 첫 번째 강아지였던 '토르'를 잃어버렸었거든요.
가족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는지?
당시에 유행했던 대중적인 음악들이 생각나요. 팝이나 락이요. 락은 소프트 락같은거요. 그다음으로는 스페인 대중 팝이 생각나요.
어렸을 때 본 영화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는지?
부모님의 최애 영화인 라스트 모히칸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부모님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항상 그 영화를 보시곤 했어요. 아빠는 그 영화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한 20번은 보셨을걸요?
혹시, 가족이 축구를 제외한 다른 스포츠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우리 가족 중 스포츠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제가 유일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온 가족이 저에게만 집중했어요. 현재는 제 사촌 동생 두 명도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온 가족이 축구에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사촌 동생들이 축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온 가족의 집중이 저에게만 쏠려있었어요.
온 가족이 모였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지?
저희 가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가족으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특히, 저는 아빠와 특별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낚시인데, 저희 둘 다 낚시를 정말 좋아해요. 제 기억으로 아빠는 낚시를 정말 많이 다니셨고 우리는 낚시를 하기 위해 발렌시아 근처의 강가나 바다로 자주 나갔어요. 한 번은 제가 10살 때인데, 아빠가 저와 함께 낚시를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저를 깨운 적도 있어요. 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고 아직까지도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우리는 낚시가 끝난 후, 잡은 생선을 먹기도 했어요. 주로 도미나 바다 배스를 잡았고 보트를 끌고 나갈 때는 참치를 잡기도 했어요. 또, 오징어와 문어도 잡았었어요. 생각해보니 정말 많이 잡았었네요!
그렇다면, 해산물이 식단에 큰 부분을 차지했는지?
네, 그리고 빠에야도 많이 먹었어요! 발렌시아에서 빠에야는 일요일에 가족이 모여서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에요. 발렌시아 빠에야의 재료는 정말 완벽해요. 하지만, 레시피는 가족 비밀이니 여기까지 할게요.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는 보통 어디서 먹었는지?
고향에서의 외식은 친척네 집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온 가족이 모이면 친척네로 가고 다음번 모임에는 다른 친척네로 가곤 해요. 하지만, 저희는 주로 할머니 댁에서 모였고 그곳은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소였어요. 저희는 온 가족이 모이면 주로 할머니 댁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고, 할머니 역시 온 가족이 함께 모여있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가족 하면 떠오르는 게임이 있는지?
카드 게임, 도미노, 파치스가 생각나요. 일요일만 되면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빠에야를 먹었고, 그 후에는 몇 시간 동안 파치스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당시에, 가족은 어떤 차를 몰았는지?
빨간색 피아트 판다였어요. 제가 아마 7~8살 때였을 거예요. 정말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 차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아마 8~9년간 몰았던 거 같아요. 그다음 차는 세아트 코르도바였어요. 그 차는 무려 14년간 우리 가족과 함께 했어요. 그리고 제가 18살이 되어 첫 면허증을 땄을 때, 그 차가 바로 제 첫차이기도 했어요.
가족이 겪었던 위기들 중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는지?
10살인가 12살 때 부상을 당했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거 같아요.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놀라워요. 여름에 10~12센티가 자란 적이 있는데, 엉덩이뼈가 너무 빨리 자라 진짜 뼈는 아니었고 연골이었어요. 그래서 축구를 하려고 할 때마다 부상을 입었어요. 연골이 부서져서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이 1년 반 동안 3~4번이나 반복되었어요.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저 역시 부상에 매우 지친 상태였어요. 정말 뛰고 싶었지만 1년 반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아빠께 또다시 다친다면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 부상은 재발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았어요. 성장이 안정화되기 시작하면서 뼈도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고 연골이 아닌 진짜 뼈로 점점 자리를 잡아갔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1년에 10~12센티가 자란 것은 정말 미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충고가 있는지?
부모님은 항상 훌륭한 프로 선수의 자질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쳐주셨어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씀해 주셨고 할 때만큼은 100%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부모님의 이런 충고가 제가 현재 이곳에 있을 수 있게 된 이유라고 생각해요.
가족과 함께 축구를 접했던 첫 순간이 기억나는지?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는 어렸을 때 동네 팀에서 뛴 지 6개월도 채 안돼서 발렌시아로 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발렌시아에서 잘 적응했고 경기에 출전했을 때 가족들이 정말 기뻐했던 걸로 기억해요. 우리 가족은 제가 작은 시골 마을의 축구팀에서 뛰다가 빅 클럽인 발렌시아가 있는 대도시에서 축구를 한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어요.
온 가족이 축구를 좋아하는지?
모두가 열렬한 축구팬이에요! 처음엔 축구를 이해하지 못했고 축구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심지어는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몇몇 리그 경기와 챔피언스리그 경기들은 봐왔지만, 그것도 항상 보는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주말마다 스페인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챙겨보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조차도 그렇게 많은 축구 경기들을 보진 않아요. 저희 가족은 정말 모든 경기를 다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축구를 너무 많이 해서 혼난 적은 없었는지?
있어요. 가족들은 저에게 항상 많은 충고를 해줬어요. 최대한 부상을 입지 않고 스스로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친구들과 함께 동네 길거리에서 노는 것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라고 말해 주셨어요. 제가 빅 클럽의 유스팀에서 뛸 때도 그렇고 제가 정말 어렸을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항상 프로 선수의 마인드를 가지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것은 어린 나이인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특히,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서 놀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그게 좀 짜증 나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루고 싶고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면 그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가족이 응원하는 팀이 있는지?
발렌시아를 응원해요. 가족 대다수가 발렌시아의 서포터예요.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예전부터 정말 좋아하는 클럽이 없었어요. 저는 그냥 축구 자체가 좋은 거 같아요.
어렸을 때, 가장 많이 경기를 보러 온 사람은 누구였는지?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함께 항상 제 경기를 보러 와주셨어요. 진짜 매일 오셨던 거 같아요. 그리고 부모님과 이모, 삼촌까지 총 4분 정도는 제가 뛰는 모든 경기에 오셨던 거 같아요. 특히, 부모님은 제가 어디에서 경기를 하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항상 그 자리에 계셨어요. 부모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해주셨어요.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애로 사항이 많았어요. 스페인에서 브라질까지 약 11시간이 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가족들은 비행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경기를 직접 보러 오는 것은 사실상 힘들었고 그것은 못한 거였지 안 한 게 아니었어요. 브라질에서 뛸 때는 솔직히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가족 전체의 기억에 남을만한 경기가 있는지?
17살 때 마요르카에서 라 리가 데뷔전을 가졌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 경기는 온 가족에게 있어 매우 큰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그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몇몇 멋진 순간들을 경험했어요. 승격했을 때, 플레이오프 경기, 그리고 브라질에서 2번의 타이틀을 들어 올렸을 때의 기분은 정말 엄청났어요. 그리고 마라카낭(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브라질 대표팀, 플라멩구, 플루미넨시의 홈구장)에서 뛰었을 때도 저에게는 엄청난 순간이었어요. 커리어에 있어 매년 멋진 순간들을 보냈던 거 같아요. 현재로서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축구 선수가 된 후, 가족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는지?
저는 항상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든 가족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현재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제가 성취한 것들을 가족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제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요. 가족들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제 아내와 아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저와 함께 이 기분들을 느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