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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소식/가십 및 루머

[미켈 아르테타 특집]아르테타 아스날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자!(스왑 주의)

 

출처 :  https://www.arsenal.com/

 

본머스전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아르테타는 과연 아스날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미켈 아르테타는 아스날의 새로운 감독이 되었고 자신의 첫 감독직인 만큼 대부분의 사람의 눈에는 아마추어처럼 보일 것이다. 심지어 아르테타는 비록, 최근에 4명의 코치진을 선임하기는 했지만, 기존에 보유한 코칭 사단도 없으며 경험 부분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도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아르테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20년 전부터 감독을 준비해왔고, 타고난 리더라고 말하고 있다.


1.바르셀로나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 (Ara Balasanyan)

 

 

아르테타는 스페인의 산 세바스찬에서 자랐지만 14살에 집을 나와 자신이 동경하던 바르셀로나의 철학이 담겨있는 라 마시아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라우드럽, 호마리우, 쿠만, 스토이코프, 호나우두, 과르디올라와 같은 선수들은 그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플레이는 자신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그는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부터 일종의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그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비범한 무언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 사실 과르디올라는 자신보다 11살 어린 아르테타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어쩌면, 20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7살이나 많은 당시 슈퍼스타였던 마이클 라우드럽에게"심플하게 해 마이클"이라고 소리쳤던 자신과 비슷한 아르테타의 비범함을 보고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당시에 라우드럽은 세 명의 선수를 제치고 드리블을 하다가 볼을 빼앗겼고 상대에게 좋은 기회를 내주자 이 심플하게 하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때, 라우드럽은 "말이야 간단하지"라고 말하며 윙크를 했지만 사실 그는 의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말할 용기가 있는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아르테타와 과르디올라는 긴밀하게는 아니지만 라 마시아 프로그램의 같은 졸업생으로 어느 정도의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여하튼, 아르테타는 청소년 시기에 엄격한 규율 속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신의 청소년기를 바쳤지만 결국 팀의 눈에 들지 못했고 자신 역시 사비와 이니에스타의 재능을 알고 있었기에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다른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2.PSG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 (Kevin Boardman)

 

 

그렇게 아르테타는 2001년 PSG로 임대를 가게 되었고 거기에는 호나우지뉴, 아넬카, 오카차, 에인세 등과 같은 엄청난 선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 토트넘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도 있었다.

 

아르테타는 포체티노가 드레싱 룸에서 하는 행동, 선수들 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팀 동료들의 존경을 얻는 방법과 행동들을 보고 자신과 비슷한 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르테타는 이런 포체티노를 닮고 싶어 했고, 어떻게 리더가 되는지 배우고 싶어 했다.

 

한 가지 일화로, 아르테타는 17세에 PSG에서 데뷔 전을 가졌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프리킥과 세트피스를 맡겠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를 회상하며 포체티노는 지난 2월 Sky Sports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르테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재능은 물론 경기장 위에서도 성숙했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선수였어요. 특히나, 축구에 대한 그의 지식은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했어요.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30대 축구 선수와 같은 수준으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선수였어요. 그가 만약 코치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최고의 코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틀림없이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의 인품과 캐릭터는 탑 클래스에요."

 

당시에, 아르테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두 시즌 동안 52경기에 출전하며 PSG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스코틀랜드 클럽팀 레인저스로 거취를 옮겨야만 했다.


3.레인저스

출처 : Reuters ( https://www.hitc.com/ )

 

 

아르테타는 PSG 생활을 마음에 들어했다. 엄청난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었고 특히, 라 마시아 생활과는 다르게 자유로운 분위기도 한몫했다고 한다. 아르테타는 PSG 시절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밤에 외출하고 싶으면 외출할 수 있었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실 수 있었어요. 엄격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당시에 바르셀로나는 돈이 필요했고 PSG에게 아르테타의 이적료로 터무니없이 큰돈을 요구했다. 이때, 레인저스가 아르테타를 영입하기 위해 현금을 가져왔고 바르셀로나는 이 제안을 수락했다.

 

레인저스 역시 역사가 깊은 빅 클럽이기 때문에 아르테타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스코틀랜드로 이동했고, 나중에 아르테타 본인 역시 레인저스로의 이적이 프리미어리그 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다고 말한다.


4.에버튼

출처 : Getty Images ( https://www.dailymail.co.uk/ )

 

 

이후,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약 6년간 뛰었던 에버튼으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에버튼 감독인 데이비드 모예스는 아르테타가 경기장 위에서 팀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는데 이 선수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재빨리 깨달았다. 그리고 이때, 현재 아스날 코치로 합류한 당시 모예스 감독의 수석코치 스티브 라운드 역시 옆에서 아르테타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르테타는 에버튼에서 클럽 올해의 선수로 두 번이나 선정된 적이 있으며 팬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선수였다.

 

여담으로, 아르테타는 당시에 리버풀의 스타인 스티븐 제라드를 제치고 지역 신문인 Liverpool Echo가 선정한 2007년 올해의 스포츠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겸손하고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아르테타는 상을 받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따로 준비된 소감문조차 없었다고 한다.

 

또, 아르테타는 에버튼에서 세련된 플레이를 보여준 A급 미드필더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사비, 이니에스타, 사비 알론소 등 당대 내로라하는 미드필더 자원들이 많았던 스페인이었기에 아르테타의 대표팀 선발은 본인이 스스로도 힘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불만을 표출한 적이 없으며 이는 곧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그리고 2011년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아르테타는 아스날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당시 아스날은 맨유에게 2-8 가르마 대첩을 당한 이후였고, 일종의 패닉 바이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게 된다. 이때 영입된 선수들은 총 9명으로,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제르비뉴, 아르테타, 메르테사커, 안드레 산토스, 박주영, 젠킨슨, 조엘 캠벨, 베나윤이 아스날에 합류하게 되었다.

 

다시 아르테타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스날이 아르테타에게 접근한 시기는 이적시장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메디컬 테스트를 받을 시간도 부족했을뿐더러 아르테타 본인에게 있어서도 금전적으로 특별히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르테타는 아스날로 이적하고 싶어 했고,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아르테타는 자신의 마음이 결정되면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때, 에버튼 회장인 빌 켄라이트는 아스날의 갑작스러운 접근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였지만 아스날로 이적하고 싶은 강한 신념을 갖게 된 아르테타는 켄라이트 회장을 직접 설득했다고 한다.


5.아스날

출처 : Charlie Forgham-Bailey/Shutterstock ( https://www.si.com/ )

 

 

그렇게 아스날에 입단하게 된 아르테타는 조금은 낯선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스날은 아르센 벵거라는 오랜 시간 팀을 이끌어 온 지도자 밑에서 이미 체계가 굳혀진 팀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팀 내에서는 대립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아르테타의 시선에서는 드레싱 룸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말을 꺼내려고 하는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선뜻 나서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상황들을 접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런 환경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르테타는 자신의 성향상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번은 자신의 데뷔 전이었던 스완지와의 경기, 심지어 팀에 합류한지 10일째 정도 되는 날이었다. 전반전을 0-0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싱 룸은 여전히 조용했고, 결국 아르테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내뱉었다고 한다. 이 순간을 목격한 벵거와 아스날 선수들은 이날 클럽이 진정한 리더를 영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벵거는 하프타임에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아르테타는 이 점이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르테타는 매 경기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종종 팀 동료들에게 전술적인 지시를 전달하며 전술과 관련된 부분들을 통제했다고 한다. 심지어, 훈련장에서는 선수들과의 대화 시간보다는 코칭 스탭들과의 대화 시간이 더 길었다고 한다.

 

또, 아르테타는 비디오 분석가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다음 경기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이것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꽤 흔한 일이었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업무용 아이패드를 통제하여 관련 소프트웨어들을 살펴보고 자신만의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또, 아르테타는 당시에 최소한의 것 외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지급하지 않았던 아스날의 보너스 제도에도 불만이 있었다.

 

2014 FA 컵 결승전에서 헐시티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아스날의 주장이었던 아르테타는 아스톤 빌라와의 2015 FA 컵 결승전에서도 팀의 주장이었다. 물론, 당시에 아르테타는 부상이었기 때문에 경기에는 출전할 수 없었지만 경기가 끝난 뒤 드레싱 룸에서 선수들과 함께 자축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때 함께했던 외질, 체임버스, 마르티네스, 벨레린, 메이틀랜드-나일스는 아르테타를 이제 팀의 주장이 아니라 감독으로 만나게 되었어요!

 

한창 샴페인을 뿌리며 자축을 하고 있을 때, 클럽 대주주였던, 현재는 구단주라고 볼 수 있는 스탄 크뢴케가 아스날 CEO였던 이반 가지디스와 함께 드레싱 룸을 방문했다. 아르테타는 클럽의 노장 선수들 중 한 명으로서 진지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을 법한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봐, 이반 우리 보너스는 어딨어?"라고 소리쳤고 가지디스는 그의 농담에 동조하듯이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여기 있어."라고 답했다.

 

이처럼, 아르테타는 클럽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의 방법으로 마찰을 계속 유발하려고 노력했고 이렇게 행동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수들 및 클럽 사람들 역시 이것이 올바른 동기를 위해 행해지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르테타에게 모이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수록 점점 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축구계는 때때로 이기적이고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르테타는 위에 언급한 이야기들처럼 모든 일에 관여하는 것이 본인 스스로에게도 기뻤고 어쩌면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아르테타는 메르테사커(현 유소년 아카데미 감독), 융베리(현 수석코치)와 같이 아스날 드레싱 룸이 활발해질 수 있게 변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것은 클럽과 선수들 간의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호전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행동들이다.

 

한편, 아르테타는 맨시티 코치 시절 벵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20년 이상을 한 클럽에서 보낸 커리어를 가진 사람을 찾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그는 자신이 원하는 선수의 모습과 선수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는 선수들에게 경기장 위에서 그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격과 자유를 부여해줘요."

 

이전에, The Times의 한 기자는 아르테타를 보고 롱 패딩만 입으면 영락없는 아르센 벵거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아르테타는 미적 완벽함의 추구, 위험 감수, 더 넓은 문화적 관심 등에서 벵거와 비슷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또, 그는 벵거와 같이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본래 바스크와 카탈루냐 주변에서 자란 아르테타는 스페인어, 바스크어, 카탈루냐어를 할 수 있었고 PSG에서는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레인저스에서는 영어를 배웠다. 또, 에버튼에서는 친한 친구로 지냈던 팀 동료 누노 발렌타에게 포르투갈어를 배웠고 이탈리아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상 대화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다.

 

이후에 6개 국어에 능통한 아르테타는 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앞으로 감독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선수들 및 스탭들과의 의사소통에서도 분명한 장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2015년 눈물을 흘리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선수 커리어를 마감한 아르테타는 코치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세 가지 제안을 받았다. 하나는 벵거가 제안한 아스날 유소년 아카데미 감독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시 토트넘 감독이었던 포체티노 사단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과르디올라 사단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위에서도 언급하긴 했지만, 아르테타와 은 간간이 연락을 해오고 있었다. 토레스의 900억 일시불 골로 유명한 2012년 바르셀로나 vs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과르디올라는 아르테타에게 연락을 취했다.

 

당시, 은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풍부했던 같은 라 마시아 출신의 아르테타에게 조언을 구했고, 아르테타의 정보, 전술적 세부 수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과르디올라는 아르테타에게 조언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혼자서'앞으로 더 자주 대화를 나눠봐야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11월, 아르테타는 아스날 선수로서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를 위해 바이에른으로 갔고, 당시 뮌헨 감독은 과르디올라였다. 5-1로 뮌헨이 승리한 경기가 끝난 후, 은 아르테타에게 자신이 잉글랜드 팀을 맡게 된다면 자신과 함께 팀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에, 은 이미 펠레그리니(현 웨스트 햄 감독)의 대체자를 구하고 있는 맨시티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고 때마침 아르테타는 선수로서의 마지막 시즌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고, 아르테타는 시즌 후반에 뮌헨으로 돌아가 이 자신의 선수들과 어떻게 일하는지 자세히 보았다. 이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닮았는지, 그리고 결국 성공적인 축구팀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같은 신념과 철학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감독 벵거와의 이별을 의미했고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던 클럽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테타는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6.맨시티

출처 : Getty Images ( https://www.goal.com/ )

 

 

과르디올라 배에 승선한 아르테타에게 처음에는 특별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은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코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테타가 맨시티 코치진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 프리미어리그를 잘 알고 있는 코치라는 것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펩은 젊은 피, 새로운 에너지, 다른 생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고 이것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바로 아르테타였다.

 

은 아마존에서 제작한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All or Nothing: New Zealand All Blacks’를 보고 예스맨보다는 주변에 도전적인 목소리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펩은 자신의 코치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것을 격려하고 권장했다고 한다.

 

이것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르테타였고, 그는 처럼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은 필요할 경우 아르테타를 데려오도록 했다고 한다. 또, 아르테타가 화이트보드에 메모를 휘갈겨 쓰거나 도표를 스케치하는 동안 다른 코치들이 그의 사무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은 꽤 흔한 일이었다.

 

이렇게 아르테타는 초창기에 귀를 기울이며 클럽의 방법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살펴보았고 그 루틴을 부드럽게 조치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자신의 의견과 개선책들을 제안하며 클럽 내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또, 그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경기에서 부족한 점들을 강조함으로써 선수들의 경기력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훈련장에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비디오 분석 부서의 직원 들과의 긴 대화를 통해 라힘 스털링과 르로이 사네와 같은 선수들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경기에서 자신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최고의 선수들에게 있어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테타에게 도움을 받은 선수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그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한 이야기는 맨시티가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윙백 시스템을 사용하여 르로이 사네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내려와야만 했던 2017-18 시즌의 첫 번째 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네는 이 경기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르테타는 사네에게 "네가 이 포지션을 싫어하지만 네가 똑똑하다는 건 알아. 너는 젊은 선수이기 때문에 여전히 할 일이 많고 개선해야 할 점들도 많아."라고 말하며 직언을 하였다.

 

이에 대해 사네는 "그는 매번 옳아요.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자 좋은 코치에요. 저에게 항상 많은 부분들을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조언해줘요."라고 말했다. 또, 이외에도 아르테타는 파비안 델프, 올렉산드르 진첸코를 풀백으로 전환해야 했고 페르난지뉴는 센터백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그리고 가브리엘 제주스 역시 맨시티와 융화되는데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역시 아르테타의 도움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제주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아르테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많은 선수들을 도왔어요. 훈련 시간이 끝나도 제가 요청하면 저를 도와줬어요. 모든 선수들뿐만 아니라 클럽 안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가 정말 환상적인 코치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는 환상적인 남자이고 환상적인 감독이에요."

 

이렇게 아르테타는 선수들의 신뢰를 조금씩 얻어 갔고 심지어 은 아스날과의 경기가 있을 때면, 팀 대화를 아르테타에게 부탁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그의 친구들에 의하면 맨체스터에 있는 아르테타의 아파트에 놀라갔을 때, 그의 집 벽에는 축구 관련 메모지와 전술 도표가 빼곡히 붙어 있었고 이는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한편, 아르테타는 아르헨티나 TV 진행자 겸 배우인 아내 로레나 버널이 LA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에도 맨체스터의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을 했고 종종 가족들과 재회하기는 했지만,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과는 8시간의 시차를 두고 살았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위해 희생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것들은 축구가 아무리 즐거운 것이라고 해도 강렬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모습을 느끼게 해 줄지도 모른다. 아르테타는 자신의 업무와 사람들, 그리고 선수들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정말 진지한 사람이지만, 아르테타의 지인들에 의하면 그는 가벼운 면도 가지고 있으며 옆에 두고 싶은 남자라고 한다.

 

또, 이 지인은 The Athletic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여배우를 와이프로 둔 축구 선수라고 말하며 환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그를 옆에서 본 사람으로서 저는 그가 사람들의 말처럼 자신의 삶을 즐기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뒤처지기를 싫어하고 발전시키고 향상시키는 것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사람인 것도 사실이에요."라고 말했다.

 

모든 훌륭한 사람들은 이런 강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축구계에서는 훌륭한 감독 혹은 코치들이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아르테타의 경우에는 축구 선수부터 이런 경향을 보여왔고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 주기란 쉽지 않다. 아스날에 있었던 스탭들도 "자기 일에나 신경 좀 쓰지..." 혹은 "네가 우리보다 잘 알긴 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그가 배우고자 하는 방식과 클럽에 대한 헌신을 존중했고 그의 호기심 많은 성격을 성숙함과 지성의 지표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한번 자신의 예전 아스날 팀 동료들이 때때로 자신을 왜 '감독님'이라고 불러왔는지, 그리고 몇몇 선수들이 자신과 어울리기 힘들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르테타가 프리미어리그 명장인 벵거, 과르디올라, 포체티노와 함께 했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즉 이 세 감독의 철학을 모두 함께 했다는 것이다.

 

한편, 맨시티에서의 커리어가 쌓일수록 아르테타는 여러 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리옹과 뉴캐슬을 이끌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적절한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그리고 맨시티에서도 이미 그가 주요 클럽들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스날로부터 접촉이 왔고 아르테타는 이전 클럽으로부터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7.아스날

출처 :  http://fullsports.info/

 

 

사실, 아스날은 아르테타가 클럽을 떠난 이후로 그의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해왔다. 물론, 2018년 벵거의 후임자로 선택받지 못한 것은 그에게 있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에메리 감독을 경질한 아스날은 2019년 아르테타에게 다 시 한 번 접촉했다. 이때, 아스날 보드진이 느낀 아르테타는 18개월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처럼 냉정하고 단호한 스타일이지 감상적이거나 향수를 우선시하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내부 소식에 의하면 아르테타는 18개월 전보다 좀 더 둥긍둥글해졌고 경험이 풍부한 코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스날 수뇌부들은 예전에 클럽에서 주장 완장을 찼었던 그 경험보다는 전술가로서의 모습에 더 많은 점수를 매겼다고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온스테인이 팟캐스트에서 언급한 것에 의하면, 1군 선수들 중 일부는 아르테타의 임명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에 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이 선수들은 아르테타에 대해 더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전 감독 에메리처럼 혹은 모든 감독들처럼 아르테타 역시 결과에 의해 판단될 것이다. 아스날은 옛 영광을 회복시킬 올바른 사람이 있다고 믿고 있고, 아르테타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한 의지가 필요할 것이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스날 역시 그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줄 것이다. 이것은 당장의 결과를 보는 단거리 레이스보다는 넓게 멀리 보는 장거리 레이스가 될 것이다.